세상살이 162

반성하다 그만둔 날

반성하다 그만둔 날 처음 만난 사람들 속에서 술을 마신다 말을 새로 배우듯 조금씩 취해가며 자본가와 노동자를 얘기하다가 비정규직 부당해고에 분개를 하고 여성해방과 성매매를 말하며 반짝이는 눈동자들 틈에 입으로만 달고 다닌 것 같은 시가 길을 헤매며 주섬주섬 안주만 챙긴다 엉거주춤 따라간 나이트클럽에 취해 돌아보니 얼큰히 달아오른 얼굴들이 흐물거리고 춤을 추는 무대 위엔 노동자도 자본가도 없다 신나게 흔들어대는 사람들만 있다 찝쩍대고 쌈박질하고 홀로 비틀어대는, 아주 빠르게 회전하는 형형색색의 불빛들 아래 조금씩 젖어가며 너나없이 한 덩어리가 되어 출렁거린다 낯선 이국땅에서 총 맞아 죽고 굶어 죽어도 매일밤 일탈의 유혹처럼 찾아드는 이 자본의 꿀맛 도처에 흔들리는 일상들 등급 매기지 않기로 했다 - 김사이

세상살이 2017.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