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자식의 정파

햇살 이해수 2020. 7. 22. 13:51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방송에서 ‘정파’ 얘기를 꺼내 생각나서...

어머니는 지금도 나를 민민투(반제반파쇼민족민주투쟁위원회)라고 생각하신다.

 

자식의 정파(1)

한양대 학생회관에 민학련 사무실이 있었다. 바로 옆방은 전대협이 쓰고 있었다.

전화기를 공유해서 사용하다 보니 재밌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서로 전화를 돌려주려면 벽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야 했다.

“쿵쿵, 전대협 전화 받으세요.”, “쿵쿵, 민학련 전화 받으세요.”

어머니가 학생회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입니다.”

“...... 고생허는디 너그 말고 민민투 바꿔잉.”

 

자식의 정파(2)

수배 중일 때 서울 방배동에 살던 누나네 방문은 금기였다.

어머니 상경 소식을 듣고 새벽 2시쯤 찾아갔다.

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돈이 궁했다.

밥만 먹고 곧바로 집을 나섰다.

(이후 상황은 어머니와 누나한테 들었다.)

내가 떠난 뒤 채 10분도 되지 않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 : 누구요?

경찰 : 저예요

어머니 : 누구냐니까?

경찰 : 경찰입니다.

어머니 : 경찰이 오밤중에 뭐땀시?

경찰 : 은탁이가 임종석(수배 상태)이랑 같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왔습니다.

어머니는 문을 열자마자 손에 든 빗자루를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 : 은탁이는 민민투고 종석이는 자민툰데 어떻게 같이 다녀?”

경찰 : ......

 

자식의 정파(3)

수배 중일 때도 자수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군대 끌려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내 말 때문이었으리라.

연일 사노맹 사건이 터지던 어느 날 어머니와 통화했다.

“넌 사노맹 아니제?”

“어머니, 민민투가 사노맹으로 이름 바꿨어.”

“아이고, 이를 어째슬까나? 기냥 민민투 계속허지...”

징역살이가 길어질 것을 어머니는 체감하고 계셨던 것이다.

 

자식의 정파(4)

심상정과 갈라섰다(정의당과 노동당)고 말씀드렸다.

어머니 : 같은 민민투 아녔어?

나 : 이제 민민투, 자민투 없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어쩌고저쩌고...

어머니 : 아이고 복잡해. 기냥 민민투라고 할란다.

 

- 데모당 당수 이은탁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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