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가요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2002년) -정태춘 박은옥

햇살 이해수 2020. 10. 5. 09:39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마

막차는 생각보다 일찍 오니

눈물 같은 빗줄기가 어깨 위에

모든 걸 잃은 나의 발길 위에

싸이렌 소리로 구급차 달려가고

비에 젖은 전단들이 차도에 한 번 더 나부낀다

막차는 질주하듯 멀리서 달려오고

너는 아직 내 젖은 시야에 안 보이고

무너져, 나 오늘 여기 무너지더라도

비록 비참한 내 운명에 무릎 꿇더라도

너 어느 어둔 길모퉁이 돌아 나오려나

졸린 승객들도 모두 막차로 떠나가고

 

그 해 이후 내게 봄은 오래 오지 않고

긴 긴 어둠 속에서 나 깊이 잠들었고

가끔씩 꿈으로 그 정류장을 배회하고

너의 체온, 그 냄새까지 모두 기억하고

다시 올 봄의 화사한 첫차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내 영혼 비에 젖어 뒤척였고

 

뒤척여 내가 오늘 다시 눈을 뜨면

너는 햇살 가득한 그 봄날 언덕길로

십자가 높은 성당 큰 종소리에

거기 계단 위를 하나씩 오르고 있겠니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마

첫차는 마음보다 일찍 오니

어둠 걷혀 깨는 새벽 길모퉁이 돌아

내가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마

투명한 유리창 햇살 가득한 첫 차를 타고

초록의 그 봄날 언덕길로 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