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 작가는 2000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함께 사회문화평론지 ‘아웃사이더’를 창간한 진보 지식인이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이 2010년 집필한 『진보집권플랜』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가 진 전 교수와 온라인에서 논쟁을 벌이면서 갈라졌다.
최근에는 자본주의와 노동계급에 관한 『혁명노트』를 발간했다.
김 작가는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조국 사태' 및 진보 진영의 분화와 관련해 “자본주의자처럼 살면서
의식만 진보라고 착각하고 있는 현 집권 세력이 진보를 참칭하는 데서 시작된 혼란”이라고 했다.
칼럼니스트
Q : 조국 전 장관은 사회주의자를 자처했는데.
A : 한국에서 진보를 자임하는 일부 세력은 매우 특이한 멘탈을 갖고 있다.
머리는 진보인데, 실제로는 철저하게 자유주의적이며 자본주의적인 삶을 지향한다.
그것이 드러나서 한번 충격을 받았고, 비판해도 못 알아들어서 두번 충격을 받았다.
이런 진보 세력은 세계 역사에 유례가 없다. 일단 반일이냐, 친일이냐를 강요하거나 죽창가를 부른다는 건 진보의 언어가 아니다.
극우의 언어다.
Q : 강남좌파의 특성 아닐까.
A : ‘강남좌파’라는 말 자체에 문제가 있다. 그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실은 좌파가 아니다.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삶을 지향한다. 굳이 말하자면 합리적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인데, 여기에 좌파라는 개념을 넣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진보에 대한 인식이 복잡해졌다.
Q : 하지만 진보진영에서 조국 구하기에 나서지 않았나.
A : 비호하는 층도 있고 비판하는 층도 있다. 제 주변엔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로 처한 위치에 따라 다르다. 한국에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방의 조그만 자리까지 갈리니까 진영의 삶도 달라진다.
내가 현대미술을 좋아하는데 미술계도 정권에 따라 지원금을 받는 사람이 달라진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처럼 ‘리스트’만 안 만들었을 뿐이지 진영 논리는 그대로 있다.
또 하나는 감성의 문제인데, 진보진영 내에선 여전히 ‘적’을 상정하고 그것을 상대로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이상한 의식구조가 강하다.
조국 구하기에 나선 진보진영은 검찰을 ‘적’으로 상정한 것 같다.
Q : 진보도 처한 위치가 다르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A : 군부독재 시절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상당수가 시스템 제도권으로 들어갔는데, 온갖 직종에 진출하면서
중산층 이상의 삶을 구가한 지 오래됐다. 심지어 강남 입시학원에도 386 운동권이 들어가서 패권을 갖고 있다.
대학교수가 된 사람들은 서로의 자녀를 위해 추천서 써주고 인턴 품앗이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보통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진보적 삶의 가치와 전혀 다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남아있는 건 여전히 '민주 대(對) 반민주' 구도다. 30~40년 전이고 자신들은 이미 기득권이 됐는데,
자기들이 여전히 독재 세력과 싸우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Q : 검찰 개혁이나 공수처 설치는 진보 운동과 무관한가.
A : 큰 흐름을 보면 시스템 안에서의 권력 투쟁이라고 본다. 정권을 잡고 나면 우호적인 검찰 권력을 만들려는 시도는 늘 있었다.
Q : 조국 사태가 진보적 가치와 무관하다면, 정의당 등 진보정당은 왜 총구를 검찰로 향했나
A : 말이 거꾸로 됐다. 그들이 진보정당이 아닌 거다. 사람들이 자꾸 뒤집어서 말한다. 정략적으로 본다면 조국 사태는 진보정당에는 찬스였다.
그런데 지금 정의당은 진보를 말하지만, 실제로 하는 행동은 기성 정당과 차이가 없다. 일부 유력 정치인을 중심으로 사당화됐다.
Q :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차이는.
A :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에 검찰 수사로 가족 비리가 드러난 뒤 일부 지지층이 이를 옹호하고 나서자 노 전 대통령이 글을 하나 올렸다.
“너무 이러시면 저에게 불편하다”는 메시지였다. 그런데 돌아가시면서 다 잊혔다.
문 대통령은 그걸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거 같다.
Q : 한국에서 진보 운동은 뿌리내리지 못한 것인가.
A : 일단 주변에 매력적인 사회주의가 없다. 사회주의 국가 하면 떠오르는 게 중국이나 북한이다.
사회주의와 경쟁해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안 된다.
북유럽이 지금처럼 사회주의 정책을 수용하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에 소련이라는 강력한 공산주의 국가가 있어서다.
그들의 장점을 일부 수용하지 않으면 공산화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변화를 추동했다.
다만 북유럽을 마치 유토피아처럼 그리는 이들이 많은데 그 국가들도 현재의 시스템을 만들기까지 많은 사회적 갈등을 거쳤다.
Q : 작금의 상황은 진보의 분화인가 진화인가.
A : 진보의 분화라기보다는 진보라는 개념 자체의 오해다.
지금 벌어지는 혼란은 진보적 가치와는 완전히 무관하다.
큰 방향에서 사회가 두가지 사실을 존중해줘야 한다.
하나는 폭력혁명이 아닌 이상엔 사회가 서로를 존중해줘야 한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진보와 민주당 권력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양다리 걸치지 말고, 진보적 가치와 개념을 보다 뚜렷하게 만들고 추구해야 한다.
특별취재팀=이철재·유성운·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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