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햇살 이해수 5행시

햇살 이해수 2023. 3. 11. 02:03

사랑을 시작하려는 사람은

천지와 가장 완벽히 소통하는 자이다.

 

한 순간, 순간이 화엄을 지향하는 세계

그것을 우리는 민중적 건강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다만 이런 이야기가 시가 되려면 시인의 낙관주의가

얼마만큼 현실에 밀착해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그런 면에서 그는 현실의 어떤 곳을 포착해서 건드려야 하는지를

일찍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당하고 자랑스런 역동성을 가지고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며

그 열정이 뜨겁게 달구어 진 시절에

그는 몹시도 아팠다.

그를 홀로 남겨두고 떠난 혁명 때문에 아팠던 게 아나라

혼자 남은 자신 때문에 아팠다.

아무런 수식을 보태지 않은 ‘아팠다’라는 직접어법이

아프게 찌른다.

한 사람의 시민을 보호하지 못 하는 혁명,

한 줄의 시를 보호하지 못 하는 혁명은 그리하여 그를

좌절의 깊은 늪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든다.

 

아생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쉬이 꽃을 피웠다, 그래서 모두 졌다.

 

그의 아픔이 전류처럼 감염이 되는 까닭은

현실 인식이 너무나 솔직하기 때문이다.

‘모두 졌다’는 짤막한 두 어절 속에

지나온 생애의 진정성이 집약되어 있다.

어디 꽃만 졌겠는가!

이것만으로도 그의 뼈저린 회한과 좌절의 깊이를

충분히 헤아릴 만하다.

그에게 술 한잔 받아주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깊디깊은 절망의 심연에서 어찌 빠져나왔느냐?고

 

 지경이 되도록 어지간히 속 썩인 놈,

내리내리 부끄러웠거늘

 

이것은 단단한 자기반성으로

담백한 참회록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듯 싶다.

광기의 80년대! 아집과 편견, 에고이스트적인 욕심,

그쪽으로 쏠리는 마음을 자르고 거기에 불을 지르고

돌아선 발자국마저 지우고자 하는 것은

현재의 사랑의 고결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맹목적인 사랑은 쓰디 쓴 절망을 예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달려가다가는 주춤거리고 주춤거리다가는 다시 달려간다.

그 주춤거림을, 그 두려움을 받아드리는 게 결국은

사랑을 완성하는 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아, 이제 알겠다! 그가 왜?

“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 ”라고 늘상 외쳐댔는지를

일견 겸손해 보이기도 하는 그의 말 속에는

‘나도 이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안다 ’는

그의 작은 선언이 들어 있는 게 아닐까?

 

진 산전수전기 다 덮어두고

일상, 그 철학적 투쟁에서 승리하자

 

그는 오랜 방황과 좌절을 딛고 무등산 같은 든든함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넓고 푸근하게 감싸려고 한다.

그의 순정함이, 어질고 따스함이 삶의 곳곳에서 은근한 빛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참담한 실패를 이만큼 곰삭여 꺼내 놓은 사람이 또 있을까

신산스러운 고비에서 밟히고 꺾인 감정들을 꾹꾹 누러두었다가

마침내 숙성을 끝내고 틔워올린 봉오리처럼

이것은 발림의 언어가 아니라 참삶이며 더블어 

그의 처절한 서정시인 것이다.

 

긍, 그래 패자부활전을 통해

세상과의 거침없는 한판 승부를 겨뤄 보자

 

결코 사소하지 않은 그의  옹골진 약속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어야겠다.

그도 언젠가는 즐거움이 망라된 노동을 하고

정당한 품삯을 받아 전전푼푼이 모아서

화사한 봄옷 한 벌 맞춰 입어야 하지 않겠나

이보시게, 세상없는 고집쟁이 그여! 

케케묵은 '나'는 그만 놓아 주고 

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그녀나 꼭 붙드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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