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에 가면
다사분주한 일상을 털어
느긋한 장항선 열차표로 바꿨다
반은 거무튀튀하고
나머지
반절은 무턱대고 흰,
증오만 왁자르르한
아수라장의 도심을 빠져나와
하나같이 무색투명한 선경으로 들어서니
서로 부풀려서 떠들고
서로 얕잡아 모멸하는 세상이지만
배꼬인 악연 밖에는
부귀공명을 헌신짝처럼 팽개친
은군자 한 명 살고 있어
반짝이는 은모래 원고지 위에
조가비로 ‘멸사’란 글자를 정성스레 겹쓴다
기다림이 절절한 망주폭포
사붓한 재회설의 명사십리
붉은빛이 요요한 월영단풍
동닿는 인연의 무산십이봉
기러기가 다시 날아든 평사낙안
돛단배가 무사귀환한 삼도귀범
감빛이 가득가득한 선유낙조
새벽 불빛이 찬연한 장자어화
평화의 갯바람을 원 없이 마셨고
무욕허심을 진탕 맛보았던
배부른 오늘!
무등한 선유도에 가면
너. 나. 없이
신선의 반열에 올라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