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162

전곡리를 지나면서

쌍코뿔이에게 쫓긴 네가 우리 동굴로 황급히 뛰어들었을 때 나는 뗀석기로 발라 낸 털매머드 살코기를 장작불에 구워 늦은 아침을 먹던 참이었다 할아버지께 손 쓰는 법을 사사 받았고 아버지한테는 바로 서는 법을 배웠던 나 같은 동굴뜨기 원시인의 눈에는 너는 설설고사리처럼 늘씬하고 어여뻤다 자기네 동굴인류가 만든 주먹도끼가 세계 최고라고 뽐내던 모비우스는 우리가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던 전곡리 주먹도끼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이용해 벽에 시 나부랭이를 휘갈겨 써대는 방안풍수 글품쟁이였고 산너머 동굴의 무녀 딸이라던 네가 장쾌한 재인폭포 앞에서 춤을 출 때면 넌 한 마리의 우아한 두루미였다 ‘행복은 짧고 고독은 길다!’는 딱한 아포리즘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연인과 광인과 시인은 가위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

세상살이 2021.09.20

당신이 사랑을 하고자 한다면

빈손과 빈손으로 나누는 악수는 서로 맨몸과 맨몸이 만나야만 성사되는 사랑과 닮았습니다. 내 손에 무기가 없음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빈손을 건내는 악수처럼, 사랑도 나를 완전히 무장해제하지 않고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에 벽을 두른 사람은 상처받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타인의 따뜻한 손길조차 온전하게 느낄 수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입을 상처를 두려워하면서 타인의 애정을 구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만약 당신이 사랑을 하고자 한다면 지순한 열정을 빼고는 들꽃처럼 맨가슴으로 그 대상을 찾아나서 보십시오!

세상살이 2021.09.17

이별의 광장에 서서

차라리 날.... 당신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왜 그런 말을 하지? ─당신이 원하는 걸 못해 줄 것 같아서 시를 적다가 또 생각났다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가 도착하기도 전에 포기한 당신의 사랑은 지탄받아 마땅하다만 항시 비뚜루 선 채 야유와 비웃음만 보내고 있는 이 막돼먹은 시대에 온혈과 더운약은 물론이거니와 열루까지도 서슴없이 나에게 건네주던 당신은 미워해서도 원망해서도 안되는 사람, 더없이 고맙고 감사한 사랑이다 내 맘이 닿을 수 없는 아니 닿아서도 안되는 곳으로 당신을 보내 놓고 여기 이별의 광장에 서서 수북이 쌓여 있는 아쉬움과 회한덩이를 가만히 보고 있다 고스란히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다 나는 무슨 수로 극복할 것인가 솔직히 두렵다

세상살이 2021.09.15

심학산에서 배우다

왁자지껄한 둘레길 입구, 호호백발의 더덕 한 바구니가 밥 한 그릇을 열망하고 있다 내가 산에 오르는 까닭은 무화된 논리로 뻔질난 척 조소하는 나와는 다르게 과감무쌍하게 낡은 옷를 벗고 주저없이 새옷으로 갈아입는 아름드리나무의 노마디즘과 세찬 바람비와 폭설에도 불구하고 끄떡없고 말짱한 수투바위의 태연자약함을 배우기 위함이다 내가 숲으로 들어가는 까닭은 버리기도 전에 또 채우려고 하는 나 같은 욕심보와는 다르게 온 산 골골샅샅이에다 녹색의 잔치상을 차려 놓고 달곰삼삼한 피톤치드와 명주바람을 모두에게 고루고루 나누어 주는 배려심 많고 욕심 없는 숲의 함께살이 철학을 공부하기 위함이다 내가 하늘을 우러르는 까닭은 자본 쟁탈전 승자가 독차지하는 부박한 세상과는 다르게 모두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세상! 네오내오없이..

세상살이 2021.09.12

김광석, 그리고 당신

한 푼 벌러 가는 길, 늙어 추레한 애마 올라타서 이랴 가자! 하면 스피커를 통해 틀림없이 안부를 묻는 정 묻은 그의 목소리. 매캐한 바람이 불던 87년 초가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처음 공연하던 날, 노오란 녹두꽃 한 다발을 들고 우리 곁으로 온 청송녹죽 같은 그. 가을비가 애잔하게 내리던 1989년 시월 퀴즈아카데미 최강전이 열리던 날, 통기타를 튕기며 가슴으로 불러 젖히던 수줍음이 참 많던 그. 헐레벌떡 달려온 홍이 김광석이 죽었다고 정말? 말도 안돼 왜? 몰라 1996년 1월 6일 그가 하늘문 열던 날, 난 책방 문 닫고 삼일 간 실성통곡했어. 부릉부릉 할리데이비슨 타고 복사꽃처럼 환해진 마흔 살의 그, 뒷자석에 현식이형 태우고 도화나무길 따라 룰루랄라 도솔천 여행하였다고? 하얗게 아카시아꽃 피던..

세상살이 2021.09.11

애인이 되어 달라굽쇼?

산중턱에 사철 푸른 단벌옷을 입고 짐짓 견실한 척 서 있는 임대책중한 소나무 같은 남편은 싫고 당신과 더블어 보헤미안으로 살면서 에스프리로 시를 적는 분방호탕한 들꽃이었으면 합니다. 만날 때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귀전에 대고 윙윙거리는 시끄러운 날파리 같은 남친은 싫고 당신과 함께 무욕과 지족을 이야기하며 속살속살 흘러가는 청쾌한 나릿물이었으면 합니다. 때 빼고 광 내고 번듯하게 찾아와 극렬히 사랑하다가 탁란하고 도망치는 뻐꾸기 같은 애인은 싫고 당신의 이마에 맺힌 이슬땀을 서분서분 닦아 주는 으늑한 솔솔바람이었으면 합니다.

세상살이 2021.09.05

그거 아세요?

사물을 대함에 있어 긍정의 눈으로 보는 사람이 부정의 눈으로 보는 사람보다 오래 잘 산다는 것을 뭣같은 돈은 바다물과 같아서 담뿍 마시면 마실수록 갈급증이 난다는 것을 한 쌍의 남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짓거리는 바로 사랑이란 것을 다음 지도자는 도량이 협소하고 식견이 천박한 정치꾼 말고 열정/균형감각/책임감을 두루 갖춘 참일꾼이어야 한다는 것을 자존심은 타인이 꼿꼿이 세워 주는 것이고 자존감은 스스로가 이영차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어쭙잖은 나 같은 삼류 글쟁이조차 예술적 승리를 위해 인생의 패배를 자처한 자라는 것을 매양 눈알이 빨갛게 충혈된 고독한 자도 울면서 태어나 울다가 죽을 것을 예감하고 있다는 것을 차갑고 냉정한 이승보다 저승이 인정과 다정이 넘쳐 훨씬 더 따뜻하다는 것을 물질이 쇠할수록..

세상살이 2021.09.03

이재용은 풀어주고

마침내 문재인정권이 막장까지 왔다. 이재용은 풀어 주고 양경수는 구속한다. 민주라는 탈을 쓴 문재인정권이 하는 짓이다. 수구 보수나 자유 보수나 군부 독재정권이나 신자유주의 정권이나 명찰은 달라도 모두 반촛불 반노동 자본가 정권이다. 그들은 법치주의를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국민이 만든 헌법을 그들이 만든 법률로 형해화하고 헌법이 아니라 법률로 통치한다. 가끔 법률조차 번거롭다 생각되면 명령과 행정해석만으로 통치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것을 자본주의식 법치주의라고 부른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와 민주는 철저하게 자본의 자유에 한정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노동자를 마음껏 착취할 자유가 되고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4,5년마다 하는 대리자 선출로 한정된다. 민주주의는 일상에서 공장과 사회로 들..

세상살이 2021.09.03

신두리 해안사구 가 보셨나요?

신산스러운 삶의 고비를 진드근히 견뎌 낸 사람들과 동행한다는 것만으로도 적잖히 위안이 되는 시간입니다. 바닥난 생기와 의욕을 단박에 채워 준다는 태안으로 우리 감성충전 여행을 떠나 볼까요? 설렘을 담뿍 실은 버스로 한 세 시간쯤 달려야 하니 마음띠 하십시오. 바람이 천겁의 세월에 걸쳐 독작했다는 집념의 창작물, 신두리 해안사구 그것은 모진 한살이가 그려 놓은 주름살투성이의 우리 자화상입니다. 어떠한 안식도 마다하고 일터와 집을 분망히 오가며 등골을 오롯이 바쳤건만 저들은 언제가부터 ‘시든 해당화’라 칭하며 우리를 그렇게 내몰고 있습니다. 제각기 바다를 향해 열어 둔 호기심이 수월찮은데도 말입니다. 강고해지는 돈팔이 연대에 홀로 맞서야 하는 갯바람은 그 얼마나 고독하고 두려울까요? 지독한 욕심보에서 쾌히 ..

세상살이 2021.08.27

땡 땡 땡

예전 같으면 흥정흥청 마시고 돈다발을 마구 뿌려 대던 밤 열시다. 사감 선생의 얼굴을 한 코로나가 자본주의를 폐문한다고 종을 땡땡 치며 내쫓는 데도 다들 유유낙낙하겠단다. 강렬한 목조르기, 금주령에도 전혀 항거하지 않을 태세다. 맘가짐은 당장이라도 충성선서를 할 판이다. 애걔걔, 이게 뭐지? 덩치가 산만한 자본주의를 옴짝달싹 못 하게 묶어 버린 건 공산주의가 아닌 바로 코로나 아닌가! 30여 년을 반자본주의자로 살아온 난 대체 뭐가 되는 거지? 1818년에 탄생하신 마 교주님께 땍땍거리며 따지고 싶은 오늘이다.

세상살이 2021.08.18